2009년 01월 17일
이제 내 신분은..
8살에 학교에 입학하고부터 난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그리고 우연찮게(?) 대학생이되었다.
정말 아무 생각없이 살았던 학창 시절이다.
나란 아이는 특별한 꿈도, 특별히 잘하는 것도, 특별히 무언가에 욕심이 있는 것도...
정말 아무것도 없는 그냥 평범한 학생이란 신분에 만족하며 살았다.
한때는 이러다가 20살에 죽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정말 허무주의, 쉽게 말해 정말 생각이 없는 나였다고나 할까.
그러다가 우연찮게, 정말 우연찮게 대학교에 들어가
그나마 나란 아이가 세상에 아주 작게나마 존재감을 드러냈던 글을 배우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딱히 배운 건 생각이 안 난다.
그저, 글이란 참으로 어렵고도 쉬운 거구나.
쉽게 누구나 쓸 수 있지만, 글이 되긴 정말 어려운 거구나.
그걸 4년 동안 배웠다.
더 이상 학생이란 신분으로 있을 수 없게 되었다.
'아, 이젠 무언해야 할까.'
'난 이제 그냥 아무개인가.'
등등..
나란 인간이 세상에 투명인간이 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그렇게 졸업이구나 싶었는데,
출판사에 취직을 했다.
그것도 교수님 추천으로!
정말 생각지도 못한, 편집자가 뭔지도 모르고(수업을 받긴 했지만 영 기억이..), 더군다나
무협이 뭔지, 판타지가 뭔지도 모르고 회사에 출근했다.
더군다나 회사하고 집까지 버스로 30분. 20년을 살면서 이렇게 가까운 곳에 출판사가 있는 줄
모르고 살았는데 말이다.
그렇게 해서 회사 생활이 시작되었다.
첫날, 그래도 치마에 구두 신고 갔는데,
쪼그리고 앉아서 이면지 정리만 죽어라 했다. 산처럼 쌓아 있는 이면지를 혼자 구석에서
일명 돼지발톱으로 철심을 뽑고 붙어 있는 포스트잇을 떼며 쓸 수 있는 이면지와
버리는 이면지를 정리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앉아서 책을 봤다. 정말 졸려서 죽는 줄 알았다. 그때까지 회사에서 커피도
혼자 타 마실 줄 몰랐고, 무작정 책상에 앉아 읽어보라고 준 책을 다 읽었다.
그리고 다음날 일을 시작했다.
그때는 퇴근 시간 1시간 남겨놓고 일주고 가는 선배가 왜 이리 밉던지.
난 정말 나중에 후배가 들어오면 이러지 말아야지라고 다짐을 했다.
일이 힘든 것보다 사람과의 일이 더 힘들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때 처음으로 이 악물고 뭔가를 해서 이겨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
이런 결심으로 일했다. 결국 그 선배는 회사를 나갔다. 물론 나 때문은 아니다.;
그리고 팀이 몇 번 바뀌다가 지금은 주니어로 간 김과장님, 그때는 그냥 언니였는데
그렇게 둘이 팀이 되어서 정말 미친 듯이 일했다.
회사에서 밤새면서 일하고, 그담날까지 일하고 그리고 어김없이 출근하고,
한 달에 20권을 마감했었나?
정말 미친 듯이 일했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그런데도 그때도 그렇지만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즐거웠던 시간이다.
둘이 만나 종종 그때 일을 회상하면 언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서로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정말 힘들었을 시간이었는데도 왠지 모르게 즐거웠고, 서로에게 의지가 되어 즐거웠던..
그리고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라고 한다면, 언니와 함께라면 다시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신나게 일해본 게 언제였던가.
그립다.
다시 팀이 바뀌고, 또 팀이 바뀌고
그러다 정대리님, 유대리님, 나.
한 달 동안 오전 근무만 하는 나 때문에 힘들었을 울 팀원들.
모두 나보다 상사인데, 여러모로 날 챙겨주고 막돼먹은 날 귀여워해준 분들.
이분들 때문에 많이 망설이기도 했지만,
지금은 나 자신에게도 휴식이 필요한 시기라 생각했다.
언젠가부터인가 일에 요령이 생겼다.
어설펐지만 무언가 하나를 해도 열심히 하려고 했던 난 없고,
요령껏 게으름이나 피우고, 주어진 일에 맞추어 틀 안에만 있을려고 하는 나를 발견했다.
편집인으로서의 나보다 회사에 한자리 차지 하고 앉아 자리보존이나 하고 있는 나를...
꿈이 없던 십대를 보냈다면, 이제 꿈을 꿀 준비를 했던 이십대를 보내고
그 꿈을 이룰 삼십대를 그리며,
난 회사원의 신분을 버렸다.
이젠 그냥 하나뽕일 뿐이다.
앞으로 어떤 신분이 될지 모르는 하나뽕.
# by | 2009/01/17 23:05 | 하나뽕 세상 | 트랙백 | 덧글(2)





